우리에게 눈물이 남아있습니까?

  • 2016-05-09
  • 한성윤
“설워라 설워라 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빈 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소서”(정인보). 어머니의 사랑은 시인에게 서러움이었습니다. 사랑은 짜릿하고 기쁘기도 하지만 역시 그 깊이에는 서러움과 눈물이 있습니다.

미국에 살다 보니 사랑이란 말을 자주 씁니다. 좋기도 하지만, 섭섭하기도 합니다. 마치 한국어에서 ‘먹다.’는 말이 자주 쓰이듯이 미국에서는 사랑한다는 ‘러브’가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일등도 먹고, 더위도 먹고, 심지어 욕도 먹습니다. 영어에는 좋아하기만 하면 러브를 씁니다. love to eat, go, sleep 한도 끝도 없습니다. 재미로 말하자면, 한국이 먹는 걸 그리워하듯 미국은 사랑을 그리워한다고나 할까요.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그렇듯이 사랑이란 말도 정확히 그 어원을 알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시작을 찾아, 생각하고 헤아린다고 풀이합니다. 요즘에 아이들 이름에도 등장하는 다솜은 괴다와 닷다에서 온 사랑의 옛말입니다.

어원은 아니지만, 한자 愛를 풀이하면서 이 말이 원래 목멜 기와 마음 심자로 만들어진 말이라는 해설이 마음에 닿습니다. 음식물을 삼킬 때 거꾸로 거슬러 올라오는 목멤의 마음. 이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뒤 쳐올 치를 더했으니 목이 막혀 답답해도 뱉어내지 않고 무거운 다리를 끌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 사랑이 됩니다.

위클리프에서 파송을 받아 인도네시아의 이라안자야에서 성경을 번역했던 정민영 선교사가 설교 중에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면서 ‘사랑’을 번역할 마땅한 단어가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원주민들과 살면서 찾은 단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목사 주제에 당시 생각났던 것이 그 흔한 복음 성가도 아니고, 엉뚱하게도 김현식 씨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였습니다. “이젠 알아요, 사랑이 무언지 마음이 아프다는 걸.” 그래서 “선교사님, 너무 성경만 보시지 말고 가요도 들으세요. 그럼 금방 해결됐을 걸 말이죠” 하며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편지에서 성령님의 영감을 받은 사도는 사랑에 대해 전하면서 맨 먼저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라고 시작합니다. 목이 막히도록 답답할 정도가 아니라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고통스러웠지만, 뱉어내지도 피하지도 않고 끝까지 힘들어도 참아내신 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눈물을 참 많이도 흘리셨습니다.

우리의 가슴이 시리도록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신앙을 생각할 때마다, 이웃을 그릴 때마다 시린 가슴에서 눈물이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목이 메지만 뱉어내지 말고 오히려 가슴에 품고 아프도록 사랑하고 견뎌내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딴 몸이 아니기에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랑의 목멤과 안타까움의 눈물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