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소원 하나이다

  • 2013-03-26
  • 한성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마음을 서늘하게 울리는 음성을 뒤로 하고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생명이신 아버지를 떠나자 우리는 생명에서 멀어졌습니다. 다정하신 아버지에서 멀어지자 우리는 서로에게도 무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한 아버지를 떠나자 미움이 우리 사이를 채우고 분노가  우리 마음을 덮어버렸습니다. 아이를 낳는 것도 그리고 기르는 시간들도 아픔이 되었습니다. 하루를 수고로 가득 채우지만 즐거움이 아니라 허전과 피로가 기다립니다. 행복을 그토록 바라건만 복의 샘을 떠났기에 행복에게 따돌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 끝없어 보이는 고생과 수고도 아랑곳없이 죽음은 모든 것을 삼키고 맙니다.


죽음도 불안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길도 고통입니다. 이 고통과 불안 속으로 주님은 오셨습니다. 이 세상의 고통으로 무너지던 이들의 눈물이 그 분의 눈 속에 담겨 흘렀습니다. 상처 입은 이들의 아픔은 주님의 상처에 담겼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멸시받은 이들에게 그는 따스한 친구였습니다.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고 가슴을 찢으며 돌이키는 이들에게 주님은 미소요 행복이며 환희였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진리로 거침없이 걸으셨읍니다. 세상의 껍데기들은 그 앞에  무너지고 부수어졌습니다. 거짓은 진실 앞에 부끄러워했고, 높아지려는 마음들은 쓸개를 핥아야 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길을 주님은 그렇게 거침없이 당당히 가셨습니다. 모든 고통과 질고를 담고 주님은 죽음을 짊어지셨습니다.


주님은 시퍼런 사랑을 우리 앞에 놓으신 것입니다. 그 사랑 앞에 거짓으로 치장한 우리가 발견되고 겹겹히 덧붙여 입던 단단한 갑옷들이 모두 무장해제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된 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날 주님은 우리의 지친 어깨가 되어주셨고 잘난 척하며 안간힘을 다해 버티는 우리의 자존심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의 한숨을 내쉬어 주셨고, 우리의 죄가 되어주셨으며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의 고난과 고통이 되셨습니다. 고난과 고통을 통해 우리 손을 잡으셨고, 만지셨으며 심장 소리를 들으셨고, 우리의 눈물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고난은 우리의 고난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눈물이신데 우리가 어디에서 울겠습니까? 주님이 우리 상처를 그 분 몸에 새기시는 데 우리가 다른 어디에서 아파하겠습니까? 잊을 수 없는 이 시퍼런 사랑이 우리의 소원이 되고 기도가 됩니다.


주님, 고난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이들의 한숨과 호소를 주님의 몸에 채우셨듯이 우리에게 채우게 하소서.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를 밀어내는 매정한 도시에서 실패와  불안과 좌절에 무너진 어깨들을  주님의 고통 속에서 보게 하시고 우리에게 채우게 하소서. 사랑의 약속을 저버리고 실망과 분노로 후벼 파낸 상처들을 우리의 몸에 채워 함께 위로하고 보듬게 하소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쓰라림을 우리 몸에 채우소서. 자녀를 위해 이곳에 왔건만 오히려 자녀와 점점 멀어지는 아픔을 주님께서 몸에 채우셨으니 우리에게도 함께 채우소서. 이웃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의 몸에 채우소서. 주님과 함께 거침없이 걷게 하소서. 한 발자국이라도 용기있게 지혜롭게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소원하나이다. 소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