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물며

  • 2013-01-25
  • 한성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달각 달각거리다가 갑자기 자판 위를 누비던 손 등에 내려앉는 햇살을 느끼고 깜짝 놀라곤 합니다. 오후의 노을이 구름 속을 뛰어 손 등에 마실을 온 것입니다. 손 등을 물들이고 춤을 추던 노을을 보고 있으면 모니터 속에 있던 세상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숨가쁘게 뛰어와서는 말도 없이 가버리지만 그 아름다움을 더 보고 싶어서 자리에서 기어코 일어나게 만들고야 맙니다. 쳐다볼 수조차 힘들게 힘을 뿜어내던 한 낮의 태양이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물들이고 하루의 문을 닫으며 저 아래로 성큼 내려갑니다. 태양의 하루는 마지막까지 아름답습니다. 


겨울이 한 창인데도 나뭇가지를 붙들고 버티던 잎새들이 마구 떨어지는 비에게는 항복한 모양입니다. 도로 변에도 집 앞에 길에도 그냥 가기 서운한 낙엽들이 길바닥에 찰싹 붙어서는 한 해 내내 빛을 머금으며 싱싱하게 지내온 날들을 추억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나성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겨울을 맞는 나뭇잎들이 벌이는 색깔의 향연은 진정 감탄의 소리밖에는 나올 것이 없습니다. 나무의 한 해는 마지막까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몸을 누일 곳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하루 종일 일을 찾아 뛰어다녔던 분들에게 마음의 상처로 우울했던 이들에게, 외로움으로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이들에게는 노을도 낙엽도 어쩌면 모두 하루의 아픔이요, 한 해의 상처일 수 있습니다. 노을은 아름답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치요, 이제 어둠과 추위를 생각해야 하는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낙엽은 더욱 쓸쑬합니다. 내 인생도 저렇게 바닥에 붙어 쓸려가는 낙엽처럼 외로와 보입니다.


그러나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우리의 얼굴을 물들이고 캔바스에 옮기기조차 아까운 색깔들을 수놓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노을은 사치가 아닙니다. 노을은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하나님의 성실하신 마음입니다. 태양이 떨어지는 순간, 별 볼일없는 찰나까지도 이렇게 아름답도록 만드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생을 향해 말하시는 속삭임입니다.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우리가 궁전에 살던지, 초가 삼간에 눕던지, 하늘을 이불로 삼든지 하나님은 똑같이 부르십니다. 찰나까지도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을 아름답게 하시려고 부르십니다.


낙엽이 아름다운 이유는 타오르는 빨강이나, 숨기지 못하는 노랑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낙엽은 나무를 위해 떨어지기에 아름답습니다. 낙엽은 그 찬란한 봄날과 여름에 나무를 위해 빛났던 것처럼 마지막에도 나무를 위해 주저없이 떨어집니다. 낙엽은 땅에 떨어지며 나무를 살립니다. 낙엽은 쓸쓸하지 않습니다. 낙엽은 마지막 한 숨결까지도 우리를 위해 다 주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니까요. 자신이 떨어져 나무를 살리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아무도 사랑해주는 이없고 돌아봐 줄 쓸쓸한 인생마저 없다고 낙엽을 보면서 슬퍼하지 마십시오. 언제 불타버릴 지도 잘려버릴지도 모르는 하찮은 나무를 위해 싹을 틔우고, 나무를 위해 빛나는 봄을 보내고, 바람에 쉬지 않고 비벼대며 나무를 살찌우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나무에게 주는 잎새를 지으셨다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이토록 벅찬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다면, 우리도 노을처럼 아름답게 내 주위를 물들이고, 이웃과 동무들을 위해 낙엽같이 영롱하게 타오르다 주저없이 떨어질 수 있다면 이 어찌 찬란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