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 2013-01-01
  • 한성윤

한 달 두 달이 흐르듯 가더니 어느새 뒷 모습만 남겨놓고 훌쩍 어제 속으로 한 해가 사라졌다. 우리의 사랑, 미움 그리고 아픔이 새겨진 시간들은 아직도 우리 마음에 잠겨있지만, 놀랍게도 그리고 아름답게도 우리에게는 반짝거리는 날이 아침과 함께 다가온다. 바로 내일이 오늘이 된 것이다.

어제는 내일이 참 가슴 벅찬 날이었다. 다가오는 한 해에는 더욱 열매맺게 하소서라고 참으로 간절하게 기도했다. 소박하게 가족들의 건강을 구하기도 하고, 쪼들리는 가계를 위해 투정섞인 탄식을 드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항상 인애로우신 하나님께서 주실 새로운 날들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따뜻해진 날이었다.

그리고 아침이 내려 앉았다.

기대와 소망이 오늘이 되었다. 어제와 오늘이 다 흐르는 시간인데 무엇이 다르냐고 애둘러 소침해 질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기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책상 위에 놓인 새 달력을 보면서, 꼼꼼한 칸 속에 갇힌 날들을 하나씩 짚어본다. 예전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살고 있을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이끌어 내시면서 이스라엘은 새로운 달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같은 날이었지만 새로운 날이 된 것이다.

달력 속에 있는 날짜들도 흐르는 시간만은 아니다. 주어진 이 날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의미를 가질 때, 이 날들은 나의 날들이 되고 우리는 달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달력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이웃을 조금 더 돌아볼 때, 힘든 이의 짐을 위해 어깨를 조금 내어줄 때 우리는 달력을 만든다. 안타까움으로 하나님께 내 이웃을 위해 손을 모을 때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다.

감사하게도 첫 날을 맞이하면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마음이 들기 보다는, 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야지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첫 날인가보다. 아침은 눈이 함박꽃 송이처럼 탐스럽게 내린 저 산위에도, 첫 날 아침에도 출근길을 재촉하는 도로 위에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무장한 저 도시에도, 그리고 지붕 아래 커피를 손에 감싸쥐고, 일어날 아이들을 기다리며 새배를 준비하는 집위에도 똑같이 희망으로 내려 앉는다. 

아침이 오늘을 시작해 달라고 귓전에 속삭인다. 어제의 고통은 어제로 족하다고 오늘은 말한다. 달력에 갖혀버리는 하루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고 내 이웃들과 함께 걸을 때 오늘은 생생하게 달력속에서 살아난다. 나는 그 달력을 내 책상위에 놓고 싶다. 굵은 참치처럼 펄떡거리는 달력을 내 가슴에 담고 싶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들과 우리는 달력을 만든다. 즐거운 미소로 그림을 그리고, 오가는 격려의 말로 선을 긋고, 아름다운 눈으로 숫자를 찍는다. 두 손으로 음식을 내어 글자에 색을 입히고, 또 두 손으로 그릇을 씻어 오늘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어른들께 부모님께 우리의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며 오늘이 달력에 새겨진다.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감사하고 그렇게 섬기며 오늘을 새 날로 만든다. 펄떡 펄떡한 새 날!

그리고 오늘은 내일의 어제다. 그래서 또 가슴이 벅차다. 오늘의 소망이 내일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달력은 매일 새롭다. 새날이 오늘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일이 오늘 시작하기 때문이다. 새 해가 오늘 우리에게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