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길

  • 2013-03-05
  • 한성윤

뚜벅뚜벅 그가 길을 만들며 걸어왔습니다. 사람이 길을 만들지만 길은 사람을 인도합니다. 길은 우리가 만나는 통로가 되고, 지친 몸이 멈추어 쉴 곳을 찾아주며, 수없이 찍히는 발자국은 우리의 인생이 됩니다. 하지만 길없는 길도 있습니다. 찾을 수도 만들 수도 없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를 영원으로 인도하는 길이었지만 우리가 버렸고 잊으려 했으며 잊었습니다. 그리고 이 천년전 어느 땅 끝 동네에서 이 길없는 길을 만들고 헤치며 그가 걸어왔습니다.


길을 걸으며 그는 우리를 만났습니다. 그의 발자국은 궁궐이 아닌 마굿간에서 시작되었고 건강한 자가 아닌 병든 이들에게 향했습니다. 유월절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던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썩은 냄새가 나는 무덤이었습니다. 그는 무덤 속에 있던 사랑하는 나사로를 만났고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죽음 안으로 들어간 길이요 죽음조차도 숨 죽인 길이 된 것입니다. 세상이 버린 이들이 있는 곳에도 길은 닿았습니다. 그들은 감사와 찬송이 되었고, 세상에서 그들이 받았던 날카로운 고통과 눈물의 돌들은 흙 속에 묻혀 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아닌 자신의 나라를 높이 세우려는 이들에게 길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밟히고 밟혀 어디가 얼굴인지 모르는 가장 낮은 얼굴이 거기에 있습니다. 밝고 환한 곳이 아니라 어두움 안으로 길은 이어져갔습니다. 그 곳에는 빛을 보지 못한 이가 어두움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에게 빛이 비추었습니다. 어두움에 묻혀있던  불결의 아들 바디매오는 믿음의 아들 바디매오로 일어납니다. 길은 불결한 어두움을 기꺼이 자기 속에 묻고 덮어주었습니다.


오물과 어둠으로 얼룩지고 날카로운 돌들이 여기저기 삐쭉히 솟아 버려 길은 사람들에게 버림받게 됩니다. 화려하고 쭉 뻗은 넓은 길들이 비웃듯 곁을 지나갑니다. 그러나 버림받은 길은 세상이 미워하고 멸시하는 이를 향해 찾아갑니다. 매번 잘난 길을 보며 실망하던 삭개오는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새로 나는 이 길을 보려고 나왔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모두가 더러워하는 자신을 던질 수 있는 길을 만납니다. ‘나를 위해 나의 상처를 자신의 몸에 새긴 길이 나에게 이르렀던’ 것입니다. 마음이 녹았고 가슴이 열렸으며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은 고약한 냄새로 가득한 길을 코를 잡고 지나치려 합니다. 그러나 한 여인은 이 길 위에 향기나는 기름을 붓습니다. 오물로 얼룩지고 상처로 갈라지고 터진 이 길이 바로 ‘나를 위해 더러워지고 상처입은 길’이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더러웠지만 가장 아름다고 찬란하다는 것을 그녀는 알아버린 것입니다.


한 여인처럼 당신을 위해 이 길에 새긴 당신의 상처와 아픔을 보게 된다면 당신은 원수에게 까지도 마음을 열게 하고, 죄인도 친구로 삼으며, 상처를 작품으로 만들고 결국 죽음마저도 삼켜버리는 생명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길은 당신의 무겁고 지친 마음을 움푹 파인 깊은 바퀴 자국에 고스란히 담아 주고, 외로이 홀로 걷는 당신에게 발자국이 되어 함께 걸어 갈 것입니다. 당신이 흘린 땀과 눈물은 당신의 이름으로 길 위에 새겨질 것입니다. 내 발자국이 되어주는 그 길을 따라 뚜벅뚜벅 당신의 사랑이 지금 걸어옵니다.